"소득 보장" 속여 은퇴세대 울린 '불법다단계'…서울시, 주의보 발령

강남권 중심 다단계 설명회 확산, 불법 조짐
범죄정황 포착된 7개 업체 형사입건 수사 중

#1. 정년퇴직한 60대 A씨는 인터넷에서 부업으로 안정적인 소득을 얻을 수 있다는 광고를 보고 한 화장품 업체를 찾아갔다. 찾아간 곳은 책상과 의자만 있는 임시 설명회장이었다. 회사 관계자는 "사업이 이제 막 시작해 초기 단계니 빨리 가입할 수록 조직도상 맨 윗자리를 선점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고 했다.



업체 관계자의 말을 믿고 회사에 가입한 A씨는 처음에는 꼬박꼬박 수당을 받았다. 그러나 몇 달 후 입금이 안 돼 회사에 전화를 하니 "전산 변경 중이니 기다려달라"는 답변만 받았고, 기다려도 소식이 없어 단체 대화방에 불만을 토로하자 바로 강제 퇴장 당했다. 얼마 후 합법 다단계로 홍보했던 이 회사가 불법 다단계 업체였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처럼 은퇴 세대의 노후 자금을 노린 불법다단계 업체가 성행하자 서울시가 26일 '불법 다단계 사기 주의보'를 발령하고 나섰다.

시는 이날 "최근 강남권을 중심으로 다단계 설명회가 확산되고 불법 활동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며 "1960년대에 출생한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본격 도래하면서 이들의 노후자금을 노린 범죄가 예상되는 만큼 시민들의 피해가 크게 우려된다"고 밝혔다.

불법 다단계 업체는 적법 영업의사가 없는 만큼 법의 감시망을 피하기 위해 시·도에 등록하지 않기 때문에 인허가 당국의 감독을 받지 않아 적발이 어려운 상황이다. 피해 발생 시 규모가 크고 구제 또한 사실상 힘들다.

모든 다단계 업체가 불법은 아니다. 방문판매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설립 요건을 갖추고 각 시·도에 등록한 뒤 각종 소비자 보호의무를 준수하는 경우 다단계도 합법 영업이 가능하다.

불법 다단계는 '국내 독점 총판', '무점포 1인 창업', '특허기술 보유', '안정적 노후소득 보장' 등 그럴듯한 문구를 앞세워 믿을 수 있는 업체인 것처럼 홍보한다. 그런 뒤 많은 돈을 쉽게 벌 수 있다고 부추겨 상품 구입을 강요하고, 원금과 고율의 이자를 보장한다며 투자를 요구하기도 한다.

하지만 불법 다단계는 대부분 영세업체로 소비자의 청약 철회권을 보장하지 않을 뿐더러 판매원에게 물품을 판매한 뒤 후원 수당을 지급하지 않고 잠적하거나 폐업하는 경우가 많다. 소비자 피해 보상보험 계약을 체결하지 않기 때문에 도산이나 폐업 시 소비자들은 피해 보상을 받기 어렵다.

판매제품 또한 효능이 입증되지 않은 건강식품, 건강용품일 가능성이 높아 소비자 건강에도 피해를 미칠 위험이 높다.

최근에는 건강식품, 화장품 등 상품을 매개로 한 불법 다단계뿐 아니라 블록체인이나 가상자산, 플랫폼 사업 등을 표방해 다단계 방식으로 투자금을 편취하는 신종 불법 다단계 업체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들 업체는 투자와 사기 사이의 경계를 오가는 범죄수법으로 교묘하게 형사처벌의 법망을 빠져나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업의 실체는 없고 입금받은 투자금의 대부분을 상위단계의 소수가 편취하는 '불법 금융피라미드'일 가능성이 높다는 설명이다.

서울시는 이러한 불법 다단계 영업행위에 따른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매년 정기점검과 특별점검을 실시하고 있다. 현재 범죄정황이 포착된 7개 업체에 대해 형사입건해 수사 중이다. 시는 위법행위가 확인되면 과태료 등 행정처분을 내리고, 법 위반 정도가 무거운 경우 형사입건하고 있다.

불법 다단계의 폐쇄적인 특성상 신고나 제보 없이는 범죄 혐의 포착이 어려운 만큼 불법이 의심되는 다단계 업체에 가입 권유를 받거나 피해를 입은 경우 적극 제보해달라는 당부다.

범죄 피해를 입었거나 범죄행위를 포착해 결정적인 증거와 함께 범죄행위를 신고·제보할 경우 최대 2억원까지 포상금을 받을 수 있다.

서영관 서울특별시 민생사법경찰단장은 "서민경제에 피해를 유발하는 어떠한 불법에도 엄정하게 대처할 것"이라며 "시민 여러분들께서도 불법행위를 목격하면 신속하게 서울시에 제보해 주시길 당부드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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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 임정기 서울본부장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