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고 못 받지만 고물가로 등록금 인상 시 더 이득
조선대, 4.9% 인상…인상분 63.5% 장학금에 투입
교육부, 국고 장학금 500억 증액하고 '동결 압박'
동결 결정한 총장들도 "총선 후 논의되지 않을까"
교육부가 고물가를 이유로 등록금을 올리지 말라고 대학들을 압박했음에도 지방 사립대들이 반기를 들고 나섰다.
등록금을 올리면 국고 장학금 지원을 받을 수 없음에도 학령인구 절벽 속 신입생 모집에 어려움을 겪는 지방 사립대부터 인상을 강행한 것으로 풀이된다.
31일 대학가에 따르면, 일부 비수도권 사립대들이 최근 등록금심의위원회(등심위)를 열어 2024학년도 1학기 학부 등록금 인상을 결정하거나 막바지 검토 단계에 있다.
광주 조선대는 올해 학부 등록금을 지난해 대비 4.9% 인상하기로 했다. 2009년 이후 15년 만이다. 인상분의 63.5%는 장학금으로 모두 학생들에게 돌려주고 나머지는 교육환경 개선을 위해 투입할 계획이다.
김춘성 조선대 총장은 이날 서울 서초구 더케이 호텔에서 열린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 총회에서 취재진과 만나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았다"고 말했다.
김 총장은 "국책 사업을 따 오는 학과는 그나마 환경 개선을 잘하지만 그 외의 학과는 아직 수십 년 전에 쓰던 실험 테이블(탁자)을 쓰거나 기자재가 현실적이지 못하다"며 "(학과마다) 돌아가며 환경을 개선하려 한다. 한 번에 바꾸려 해도 큰 예산이 든다"고 했다.
조선대 외에도 부산 경성대(5.64%), 대구 계명대(4.9%), 경기 경동대(3.758%)가 등심위를 열고 올해 1학기 등록금 인상을 결정했다. 부산 영산대는 등록금을 최대 5.13% 인상하는 방안을 막판 검토 중이다.
등록금을 인상하면 국가장학금 'Ⅱ유형' 예산을 받을 수 없다. 국가장학금은 나라에서 직접 저소득층에게 더 많은 장학금을 지급하는 'Ⅰ유형', 정부의 국고 지원을 받아 대학에서 지원하는 'Ⅱ 유형'으로 나뉜다.
국가장학금 Ⅱ유형은 그간 대학들이 등록금을 올리지 못하는 빗장 규제로 꼽혀 왔다. 대학은 등록금과 국고 외엔 별다른 수익 창출원이 없는데, 많게는 연간 수십억원에 이르는 국고 장학금 지원을 간과하긴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물가 인상률과 연계된 고등교육법상 등록금 인상률 상한선(직전 3개 연도 평균 소비자 물가상승률의 1.5배 이하)이 있지만 등록금 동결 기조가 이어졌다.
그러나 2022년 소비자물가상승률이 5.1%를 기록하면서 지난해부터 동결 기조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등록금 인상으로 얻을 수 있는 수익금이 국고 장학금 교부금 규모를 웃돌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2022년 1.65%에 그쳤던 등록금 인상률 상한선은 지난해 4.05%로 폭등했고 올해 5.64%로 거듭 올라 제도 도입 이래 사상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이날 조선대 김 총장에 따르면 이번 등록금 인상으로 추가 확보할 수 있는 예산은 약 60억원이다. 이는 국가장학금 'Ⅱ유형' 지원액(약 22억원)의 약 3배다.
김 총장은 "(동결이 계속되면) 해가 갈수록 학생들에 피해가 간다"며 "교직원 임금을 삭감하지 않는 이상 학생들에 대한 투자에 한계가 있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이들 지방 사립대가 인상을 강행한 것은 상당한 부담감을 견디면서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는 올해도 오석환 차관 명의로 "고물가, 고금리 등 어려운 경제 상황을 고려해 각 대학에서 등록금 동결에 적극 동참해 달라"고 거듭 호소했다. 이런 내용의 공문을 대학에 보내 압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장학금 Ⅱ유형 재정도 지난해보다 500억원 늘린 3500억원으로 편성했다. 이처럼 교육부가 강경 기조를 이어가고 정부 재정지원사업의 의존도가 높은 터라 서울 주요 대학은 대부분 동결을 결정한 상황이다.
서울대와 연세대, 숙명여대가 지난해 12월 말 일찌감치 등심위를 갖고 학부 등록금 동결을 결정했다. 뒤이어 중앙대, 이화여대, 서울시립대, 상명대 등도 이달 초 동결을 결정한 것으로 파악됐다. 아주대는 5.4% 인상을 검토했지만 최종적으로 올리지 않기로 했다.
지난 9일 아주대의 2차 등심위 회의록을 보면, 대학 측은 "국가장학금 Ⅱ유형 참여 제한 및 정부 재정지원사업 조건 등 교육부 제재 사항을 확인해 최종적으로 학부 등록금을 동결하는 것으로 확정했다"고 밝혔다.
이날 대교협 총회에 참석한 총장들 중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과의 간담회 질의응답 시간에서 등록금 규제를 직접 언급한 사람은 없었다. 교육부의 거듭된 압박 요구를 은연중 의식한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대학들은 정부가 여론 동향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밖에 없는 총선이 끝나면 자연스럽게 동결 규제도 해제되지 않겠느냐고 기대하는 눈치다.
등록금 동결을 결정한 한 서울 지역 주요 사립대 총장은 이날 오후 뉴시스와 만나 "등록금 문제는 총선 끝나면 좀 자유롭게 논의가 되지 않겠나. 많은 총장들이 그런 식으로 이해를 하고 있다"며 "내년까지 (인상을) 막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들의 등심위가 늦어도 다음 달까지 진행되는 점을 감안하면 비수도권 사립대를 중심으로 등록금을 올리는 대학은 더 늘어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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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부 / 김재성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