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숭례문 앞 관광버스 전용 주차장 만원
얌체 주차 차량에 진짜 관광버스는 발 동동
"관광객 증가…집회까지 겹치면 일대 혼란"
"주차 위반, 차고지 증명제 단속 강화해야"
"저는 월 주차료로 25만원씩을 내요. 자기 돈 아까우면 남의 돈 아까운 것도 알아야지. 이렇게 오래 주차할 거 같으면 다른 데로 이동해야죠."(30년 경력 관광버스 기사)
12일 오전 찾은 서울 중구 숭례문 인근 8차선 도로. 이곳엔 양방향 끝 차선에 관광버스를 위한 주차구역 다섯 면이 마련돼 있다.
숭례문과 인근 남대문시장, 명동 등 서울 도심 내 주요 관광지를 찾는 관광객들의 주차 공간 부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 차도임에도 불구하고 노상 주차 공간으로 활용한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서 만난 관광버스 기사들은 얌체 주차족들로 인해 이 주차 구역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목소리로 이야기했다.
관광객을 태우거나 내리는 데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주차 비용을 아끼려는 일부 비양심적 버스 기사들의 전용 주차구역으로 변질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단속하는 공무원들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이곳엔 관광버스에 한해 최대 2시간까지 주차가 가능하고 그 이후엔 과태료가 부과된다는 안내문이 설치돼 있었다. 하지만 주차된 5대의 차량은 3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들 차량에 적힌 문구를 보니 5대 중 2대는 모 기업의 통근 차량, 다른 2대는 경기 화성에서 서울을 오가는 광역버스의 임시배차 차량으로 추정된다. 단 한 대만이 여행사 차량이었다.
그렇다 보니 정작 관광객을 태우고 온 관광버스는 주차구역이 아닌 곳에서 주변의 눈치를 보며 주정차하고 있었다.
한 관광버스는 비상등을 켜고 속도를 줄인 채 공간을 찾다가 뒤에서 울리는 경적에 이내 정차를 포기하고 자리를 떠나기도 했다.
관광객들을 태우기 위해 주차구역 밖에 정차 중이던 손순근(60)씨는 "이곳은 명동에 오는 관광객, 외국인들을 배려해서 만들어 놓은 건데 전혀 활용을 못 하고 있다"고 혀를 찼다.
인근 시민들도 얌체 주차족 때문에 일대 혼잡이 크다고 호소했다.
남대문시장에 20년째 물건 납품을 하고 있다는 이창칠(52)씨는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관광객이 2~3배 많아진 데다 집회까지 몰리면서 일대가 아주 혼잡하다"며 "저 버스들은 말뚝처럼 아침에 딱 대놓으면 끝"이라고 말했다.
인근 건물에서 드나드는 차량을 안내하던 석인엽(81)씨도 "버스들이 잠깐 정차했다 이동하는 게 아니라 아예 주차를 해버리니 회전이 안 된다"며 "바로 앞에 시내버스 정류장도 있는데 사고가 나진 않을지 예측할 수 없다"고 말했다.
2시간 초과 주차에 대한 단속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이씨는 "이 지역은 항상 장시간 주차하는 차들이 말뚝처럼 자리를 지키고 있다"며 "2시간만 주차가 가능하다고 쓰여 있지만 단속을 전혀 안 하니 그걸 지킬 이유가 없는 것 아니겠느냐"고 지적했다.
정란수 한양대 관광학부 겸임교수는 "관광버스는 원래 차고지가 증명돼야 운행을 할 수 있지만, 실제론 차고지가 없거나 너무 멀어 활용이 불가능한 경우가 있다"며 "이런 부분에 대한 단속을 확실히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탈리아 로마의 경우 구도심이 워낙 협소해 45인승 대형 버스는 아예 진입을 막는다. 국내로의 관광객 수가 더 늘어난다면 서울 사대문 내부로는 큰 버스의 진입을 제한한다든지 하는 방안을 장기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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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부 / 박옥순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