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피해아동, '생중계 영상증언' 도입…"2차피해 우려 여전"

영상진술 증거능력 위헌…법정 출석 불가피
정부, 임시처방으로 '영상중계 증인신문' 도입
피해아동 진술 흔드는 '공격적 질문' 못 막아
법조계 "현행법상 판사의 간접 증인신문 가능"

지난해 헌법재판소가 미성년 성폭력 피해자의 영상진술 증거 능력을 제한하면서 피해아동이 법정에 서서 증언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



정부가 임시처방으로 피해자가 법정에 직접 출석하는 대신 영상으로 중계하는 '영상증인신문'을 시범 도입했지만, 피고인 측의 직접질의 방식은 그대로라 2차 피해를 막기엔 역부족이란 우려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현행 제도에서도 판사가 피고인 측의 질문을 전달하는 간접신문이 가능하다며 재판부의 적극적 개입을 주문했다.

◆영상녹화진술 위헌결정…미성년 피해자 법정 출석 불가피

7일 여성가족부와 법조계에 따르면 기존에는 성폭력 피해자가 19세 미만의 미성년자인 경우, 영상으로 미리 녹화한 진술도 증거로 인정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헌법재판소는 미성년 피해자의 영상녹화 진술을 증거로 인정하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30조 제6항이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피고인의 반대신문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어린 피해자들은 수사기관에서의 진술 이후 다시 법정에 나가 낯선 사람들 앞에서 피해사실을 반복적으로 말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유도신문이 허용되는 반대신문 특성상 피고인 측의 적대적인 질문으로 2차 피해가 발생할 것이란 우려도 높다.

신수경 변호사는 지난 17일 한국여성변호사회가 개최한 심포지엄에서 "미성년 성폭력범죄는 주거지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고 30% 이상은 친족, 이웃 등 피해자와 일정한 관계가 있는 사이에서 발생한다"며 "친족이 가해자인 경우 최초 진술 이후 진술 번복을 종용하다 법정에서 피해자에게 오염된 진술을 시키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여성·아동인권단체들은 헌재 결정 이후 일제히 규탄 성명을 내고 "가해자의 방어권을 피해자 인권보다 우선했다"고 비판했다.


◆법정 생중계 '영상증인신문' 시범도입…"가해자 측 직접질의는 여전"



여가부는 대안 입법이 마련될 때까지 별도 공간에서 증인신문을 하고 이를 법정과 실시간 중계하는 '영상증인신문 시범사업'을 오는 11일부터 실시한다. 16세 미만 피해자가 영상증인신문을 희망하면 피해자 통합지원기관인 해바라기센터 8곳에서 중계장치를 활용해 증언할 수 있다.

그러나 법조계에서는 피해자가 재판 과정에 참여해야 하고, 피고인 측의 직접질의를 받아야 해 2차 피해를 근본적으로 막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김학자 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은 "현행 제도에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를 마련한 것"이라며 "아동이 직접 법정에 나가는 것보다는 낫지만, 집을 짓기 전 터를 닦은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판사의 간접질의 방식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아동에게 피고인의 변호인이 직접 반대 신문을 하는 게 아니라 재판관이 간접적으로 신문하는 형식을 취한다면 그나마 2차 가해를 피할 수 있을 것"이라며 "현행 제도 하에서도 재판부가 소송지휘권을 통해 충분히 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재판부 재량으로 진술조력인이나 가족 등 신뢰관계인이 대신 질문하도록 요청하는 것도 가능하단 설명이다. 영국과 캐나다는 영상녹화진술에서 질문했던 내용을 다시 질문하려면 판사 허가를 받도록 하는데, 재판부 의지로 반복 질문을 차단할 수 있다고도 봤다.

◆법무부, 피해아동 진술 최소화할 법 개정 추진

법조계와 시민사회는 궁극적으로는 피해자의 반복 진술과 법정 출석을 막을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여가부는 "영상증인신문 시범사업 외에 입법대안은 법무부에서 준히바고 있다"고 전했다.

법무부는 미성년 피해자의 영상녹화 진술을 법정에서 증거로 쓸 수 있도록 보완 입법을 추진 중이다. 수사과정에서 피고인이 반론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되, 중간에 전문조사관을 두는 간접질의 방식이 논의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북유럽 국가들에서 채택한 '바르나후스(Barnahus·아동의 집)' 모델과 유사하다. 피해자가 재판 전 훈련된 면접관과 면담하는 조사 과정을 녹화해 영상물을 법정에 제출하는 방식이다. 피고인(피의자) 측은 제3자를 통해 아동에게 간접적으로 질문할 수 있다.

법무부 관계자는 "1월에 발족한 젠더폭력처벌법 개정 특별분과위원회에서 대안입법 마련을 위한 6차례 회의를 진행했고, 유관기관·변호사단체와 간담회를 진행해 개정안을 마련할 것"이라며 "연내 입법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만 발의 후 국회 심의에 걸리는 시간을 고려하면 한동안 2차 피해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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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부 / 김종진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