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인과 말다툼 끝에 술취한 상태로 집안에 불 질러 동거하던 연인을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30대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대구지법 제12형사부(부장판사 조정환)는 28일 현주건조물방화치사 혐의로 기소된 A(39)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A씨는 지난해 11월3일 오후 8시부터 8시20분까지 사이에 구미의 한 다가구주택(원룸) 2층에서 페트병에 담긴 휘발유를 뿌린 다음 불을 놓아 불길이 집안 전체로 옮겨 붙게해 동거하던 여성 B(60)씨를 전신 3도 화상과 패혈증으로 사망케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2019년부터 연인 사이로 발전한 A씨와 B씨는 이듬해인 2020년 3월부터 동거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불이 나자 A씨는 홀로 집 밖으로 뛰쳐나왔고 B씨는 전신에 3도 화상을 입어 병원으로 이송된 후 치료받다가 한 달여 만에 숨졌다.
◆재판부 “화재, 피고인에 의한 방화 아닐 가능성 배제할 수 없어”
피해자는 이 사건 이후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한 상태로 의식이 없던 중 같은 해 11월15일 의식을 회복했고 병원을 방문한 경찰과의 문답에서 "이 사건 당시 피고인이 아닌 피해자 본인이 불을 붙인 것"이라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조사됐다.
다만 이러한 피해자의 진술내용은 화재 이후 감식결과 바닥에서 휘발유 성분이 발견된 점, 피고인은 이 사건 당시 가스버너를 사용하지 않았다고 진술한 점과는 부합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피해자가 명시적으로 피고인이 아닌 자신이 불을 붙인 것이라고 진술한 내용을 쉽사리 배척하기는 어렵다"며 "검찰은 피해자가 연인인 피고인의 부탁을 받고 허위로 진술했을 가능성을 제기하나 단지 연인사이라는 이유만으로 피고인의 행위를 감싸준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점, 피고인이 위 진술 이전에 피해자에게 접근해 허위진술을 부탁했음을 인정할 만한 증거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간접사실·정황만으로는 합리적 의심 여지없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려워
재판부는 인정사실과 법원이 채택해 조사한 증거들을 종합해 알 수 있는 사실 또는 사정들에 따르면 피고인이 공소사실과 같이 주거지에 휘발유를 뿌린 다음 불을 놓아 피해자가 사망에 이르렀을 것이라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고 판시했다.
피고인 A씨는 사건 발생 당시 피해자와 주거지에서 술을 마시면서 금전문제 등으로 말다툼 했고 서로 욕설을 하거나 물건을 집어던지는 등 감정이 다소 격화된 상태였다. 이 과정에서 임대인이 주위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린다는 민원이 들어왔다면서 전화를 했고 이에 A씨는 크게 화를 내기 시작했다. 이후 A씨는 건물 밖으로 나갔다가 휘발유 2ℓ를 구입하고 맥주를 구입해 마신 다음 휘발유가 든 패트병을 들고 건물로 들어갔는데 그 과정에서 지인 등에게 "저는 이만갑니다", "감사합니다" 등의 문자메시지를 보내거나 다른 지인들에게도 전화통화를 한 것으로 조사됐다.
재판부는 "당시 불을 지르겠다고 이야기하면서 불만을 가지고 있었던 대상은 피해자가 아닌 임대인이었던 것으로 보이고, 피고인도 수사기관에서부터 이 법정에 이르기까지 같은 취지로 진술했다"며 "피고인이 이 사건 당시 피해자가 있는 집 안에 불을 질러 피해자에게 피해를 입힐 목적이나 의도가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현주건조물방화치사 혐의로 기소된 A씨 재판은 지난 21일 국민참여재판으로 먼저 진행됐다. 당시 검찰은 A씨에 대해 징역 30년을 구형했고 9명으로 구성된 배심원단의 의견은 무죄 5명, 유죄 4명으로 팽팽히 나뉘었다. 배심원단 전원의 의견이 일치하지 못해 다수결로 평결했지만 재판부는 이날 판결 선고를 28일로 미뤘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불을 지른 것이 아닌가 하는 강한 의심이 든다. 피고인의 진술이 다소 모순되거나 석연치 않은 점이 있긴 하나 화재 직후부터 이 법정에 이르기까지 피해자가 불을 질렀다는 취지로 진술하고 있다"며 "이러한 사정만으로 피고인이 방화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의 이유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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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경북본부장 / 김헌규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