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부 등 범정부 전세사기 피해 지원방안 발표
보증 제도 '무자본 갭투자'에 악용…보증 대상 조정
계약 후 근저당 설정하면 '계약 해지' 특약도 반영
중개사·감평사, 전세사기 가담 '원스트라이크 아웃'
'안심전세앱’ 내놔…향후 '준공 1개월 전 시세' 제공
정부가 5월부터 전세금 반환보증 보험 가입 대상 전세가율을 100%에서 90%로 낮춘다. 시세 100%까지 가입 가능한 전세금 반환 보증 제도가 전세사기꾼들의 무자본 갭투자의 수단으로 악용돼 왔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를 통해 악성 임대인을 퇴출하고 무자본 갭투자를 차단한다는 계획이다. 다만 보증보험 가입 문턱이 높아지면 보증 제도의 보호를 못 받게 되는 세입자가 늘어나게 된다는 우려도 나온다.
국토교통부는 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관계부처 합동으로 이런 내용이 담긴 '전세사기 예방 및 피해 지원방안'을 발표했다.
국토부에 따르면 지난해 전세보증 사고액은 전년 대비 2배 이상 늘어난 약 1조2000억원이다. 전세사기 검거 건수도 전년(187건) 대비 3배 이상 늘어난 618건으로 집계됐다. 이 과정에 공인중개사가 사기에 가담한 사례도 다수 적발됐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전세사기 특별단속을 실시하고 9월 전세사기 피해 방지방안을 내놨지만 조직적 전세사기에 개인적 차원의 대응이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전세사기의 유인을 차단하고, 피해 발생시 지원을 강화하는 내용을 대책을 마련했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지난해 주택도시보증공사에 접수된 보증금 미반환 사고금액이 처음으로 1조원을 넘어서는 등 전세 피해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며 "전 정부에서 전세사기 원인이 제공되고 눈덩이처럼 불어났지만 현 정부에서 서민들의 민생 보호와 임대차 시장의 정상화를 위해 최선을 다해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보증보험 전세가율 100%→90% 하향
현행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금 반환보증은 선순위 채권과 임대 보증금액의 합이 주택 가격의 100%까지 가입을 허용하고 있다. 이는 악성 임대인의 무자본 갭투자에 악용됐다는 게 정부 판단이다.
국토부 조사 결과 시세 100%까지 보증 가입이 가능한 점을 악용해 세입자를 안심시킨 뒤 고위험 주택의 전세 계약을 체결하는 식의 전세사기 사례가 많았다. 이에 정부는 전세금 반환보증 대상 전세가율을 90%로 낮추는 방안을 시행하기로 했다.
본격적인 시행 시기는 오는 5월이다. 이미 계약을 체결한 임차인 보호를 위해 유예기간을 부여하는 것이다. 기존 보증갱신 대상자에 대해서는 내년 1월부터 적용할 방침이다.
정부는 전세가율을 90%로 조정하는 방안을 주택도시보증공사 상품 뿐 아니라 HF(주택금융공사), SGI(서울보증보험) 상품에도 동일하게 적용할 계획이다.
다만 보증 대상 전세가율을 90%로 낮추면 보증보험 가입 대상 가구가 크게 줄어들면서 제도의 양면성이 생기게 된다. 작년 보증보험 가입자가 24만명 정도 되는데 그중 25% 정도가 전세가율 90%를 초과하는 가입자였다.
국토부 권혁진 주택토시실장은 "가입 대상 가구가 줄어드는 것에 대해 고민이 많았는데 전세가율이 높은 위험계약을 최대한 회피하기 위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며 "단언할 수는 없지만 전세가격이 매매가격보다 더 떨어지는 추세를 봤을 때 전세가율이 90%를 넘어 보증을 못 받는 사람이 그렇게 많이 늘어날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권 실장은 그러면서 "전세가율이 100%면 가입이 거절되지만 보증 보험 가입 심사를 할 때 보증금만 보기 때문에 전세가를 90%로 낮추고 10%를 월세로 돌릴 경우 보증금은 가입이 가능하다"며 "원천적으로 보증 가입을 못 하게 하는 게 아니라 월세로 돌리면 언제든 가입할 수 있는 구조로 생각해 달라"고 강조했다.
정부는 또 주택도시보증공사 전세보증금 대위변제액(대출자가 갚지 못해 기관이 대신 갚아준 금액)이 급증하면서 재정건전성이 악화된 점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권 실장은 "보증 대상 전세가율을 90%로 낮춰야 선량한 임차인이 더 많이 보호받을 수 있다"며 "주택도시보증공사 대위변제액이 1조원에 달하는데 재정건전성이 악화하면 선량한 임차인을 더 이상 보증해 줄 수 없는 상황까지도 걱정했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번 조치로 악성 임대인의 무자본 갭투자를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권 실장은 "이번 대책의 핵심은 100원짜리 주택을 90원에 전세 계약을 하면 적어도 10원만큼은 임대인이 자기자본을 투입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10원만큼을 자본자본을 투입하게 하면 무자본 갭투자가 1000채까지 반복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그런 측면에서 보증 대상 전세가율을 90%로 낮추는 것"이라고 부연 설명했다.
감정평가사의 '시세 부풀리기'도 차단한다. 오는 2월부터 감정평가는 공시가격과 실거래가격이 없는 경우에만 적용하고, 협회에서 추천한 법인의 감정가만 인정해 임대인과 감정평가사의 사전 모의를 차단한다는 계획이다. 또 전세사기 의심사례 전수조사를 통해 사기에 가담한 사실이 확인된 감정사는 추천대상에서 제외한다.
등록임대사업자가 보증의무를 악용하지 못하도록 관리·감독도 강화된다. 임차인이 거주하는 주택은 보증을 가입해야만 등록이 허용된다. 공실은 ‘등록 후 가입’을 허용하되 미가입 시 임차인에게 알려 계약을 해지하고 위약금을 지급하도록 한다. 또 보증 미가입으로 등록이 말소된 임대사업자는 임대주택 추가등록을 제한한다.
◆계약 후 근저당 설정하면 '계약 해지' 특약도 반영
앞으로 전세 계약을 맺은 뒤에도 보증금이 보호될 수 있도록 공인중개사 범용 임대차 계약서에 '대항력 확보 전 근저당을 설정할 경우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특약을 반영한다.
그동안 임대차 계약을 체결한 이후부터 임차인의 대항력(우선변제권)이 발생하기 전에 임대인이 주택담보대출을 받는 경우 대출 근저당이 보증금보다 우선 보호돼 임차인이 피해를 보는 사례가 있었다.
또한 매매 등으로 인해 임대인이 변경될 때도, 임대인이 직접 알려주지 않으면 임차인이 이 사실을 알 수 없어 적기에 대응하는 것이 곤란하다는 문제도 있었다.
정부는 이에 계약 체결 후에도 보증금이 안전하게 보호될 수 있도록 은행이 주택담보대출 심사 시 확정일자 확인 후 대출을 진행하는 사업을 확대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현재는 대부분의 시중은행에서 대출심사 시 전입신고 익일 0시가 지나 우선변제권이 확보된 보증금만 우선 차감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확정일자 신고가 된 보증금을 국토부 부동산거래관리시스템(RTMS)에서 확인해 우선 차감한 후 대출을 실행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 사업은 우리은행에서 지난달 30일부터 시범사업을 진행 중인데, 오는 4월까지 다른 시중은행에도 확대될 예정이다.
◆전세사기에 전셋집 낙찰 받은 피해자 '무주택' 자격 유지
정부는 또 전세사기 피해자가 거주 주택을 낙찰받은 경우 무주택자 요건을 유지하기로 했다. 앞으로는 전세사기 피해 임차인이 공시가격 3억원 이하(지방 1억5000만원 이하)면서 전용면적 84㎡ 이하 주택을 낙찰받은 경우 임차인을 무주택자로 간주한다.
현행 전세사기 피해자가 불가피하게 거주하고 있는 주택을 낙찰받은 경우 무주택 기간이 인정되지 않아 청약 당첨 가능성이 작아지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것이다.
정부는 또 전세 사기 피해자의 주거 위기 상황 등을 감안해 저리 대출 보증금 요건을 2억원에서 3억원으로 늘리고, 대출액 한도는 1억6000만원에서 2억4000만원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오는 3월 시행할 방침이다.
아울러 전세사기에도 불구하고 기존 전셋집에 거주해야 하는 임차인에 대해서도 기존 전세대출을 1~2%대 금리로 저리 대출로 대환 할 수 있도록 상품을 신설할 계획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전세피해 임차인을 대상으로 주거 이전 시 저리 대출을 지원 중인데 지원대상이 제한적이라는 지적이 많았다"며 "보다 많은 임차인이 실질적으로 혜택을 볼 수 있도록 요건을 완화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전세사기 피해 회복을 위한 원스톱 법률서비스도 확대한다. 법률구조공단, 변호사 협회 등과 협력해 법률상담 창구를 늘릴 계획이다.
또 국토부는 법무부와 합동으로 법률지원 태스크포스를 통해 보증금 반환 절차를 단축한다. 우선 임대인 사망 시 상속대위등기 없이 임차권 등기가 가능하도록 법원의 등기 선례와 송무 선례를 개선했으며, 임대인에게 등기명령 송달 이전에 임차권 등기를 할 수 있도록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도 추진할 계획이다.
◆중개사·감평사, 전세사기 가담 '원스트라이크 아웃'
전세 사기에 가담한 공인중개사나 감정평가사는 '원스트라이크 아웃'된다.
공인중개사들은 직무 위반으로 '징역형'이 선고될 경우 자격취소가 되고 있는데, 이를 앞으로는 '금고형(집행유예 포함)'만 선고받아도 자격이 취소된다.
지금까지는 제한없이 채용하던 중개보조원 수를 중개사 1인당 최대 3인까지만 두도록 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공인중개사뿐만 아니라 전세사기에 가담한 감정평가사 역시 오는 6월 감정평가사법 개정을 추진, 자격 취소 사유를 '금고형(집유 포함) 2회'에서 '1회'로 강화할 예정이다.
국토부는 이외에도 전세사기 범죄에 대한 전반적인 단속과 처벌을 강화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먼저 현재 국토부에서 운영 중인 시장 교란행위 신고센터는 집값 담합 위주로만 부동산 거래를 관리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중개사법 위반, 거래신고법 위반 등 전세사기 의심 행위에 대해서도 적극 조치할 수 있도록 이달 중 중개사법 개정안을 발의, 업무범위를 확대할 계획이다.
또 자체적으로 지난 3년간 신고된 빌라·오피스텔·아파트 거래 중 단기간 내 주택 다량·집중 매집, 동시진행·확정일자 당일 매도 등 전세사기 의심 사례에 대한 기획조사도 지난달부터 실시, 전세사기 의심거래 집중 지역을 우선 조사하되 그 외 지역과 신규 거래 건도 연중 조사를 실시한 뒤 의심 사례를 경찰청 등 관계기관에 통보해 위법이 확인되면 엄중 처벌할 예정이다.
◆'안심전세 앱'도 내놔…향후 신축빌라 '준공 1개월 전 잠정시세' 제공
전세계약 시 확인해야 할 주요 정보를 제공하는 '안심전세 앱'도 출시했다. 해당 애플리케이션(앱)은 신축빌라 등 시세, 임대인의 세금체납 여부, 보증사고 이력, 세금체납 정보 등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우선 시세정보 파악이 어려웠던 다세대·연립주택, 50세대 미만 소형 아파트의 시세를 수도권에서부터 제공한다. 오는 7월 업그레이드된 2.0버전에서는 주택유형에 주거용 오피스텔을 추가하고, 지방 광역시로 시세제공 범위를 확대할 예정이다.
신축빌라 시세정보도 담는다. 이번 출시 버전에서 신축주택 준공 1개월 후 시세를 제공한다. 2.0버전에서는 한국공인중개사협회와 한국감정평가사협회와의 협업을 통해 준공 1개월 전에 '잠정시세'를 추가하고, 준공 1개월 후 '확정시세'를 제공한다.
시세조회 시 중개사협회와 감정평가사협회에서 추천하는 인근지역의 믿을만한 공인중개사와 감정평가사(상담센터)의 전화번호를 표시해 전문가 의견을 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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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부 차장 / 곽상현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