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식구가 죽어"…제주4·3 희생자 재심 64명 전원 무죄

제주지법 4일 검찰 직권 재심·유족 청구 재심
"선 그어놓고 좌·우익 갈라…24살 삼촌은 행불"
"어린이·노인 지체없이 총살하는 나라 어딨나"

70여 년 전 아무런 이유 없이 끌려가 유죄 판결을 받은 제주4·3 희생자 64명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제주지방법원 제4형사부(부장판사 강건)는 4일 오전 검찰 '제주4.3사건 직권재심 권고 합동수행단'이 청구한 25, 26차 직권재심(각 30명)과 유족 청구 재심(4명)을 열고 희생자 총 64명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강 부장판사는 이날 "피고인들에 대한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할 만한 어떠한 증거도 없다"며 "범죄 사실의 증명이 없는 때에 속하므로 피고인들에게 무죄를 선고한다"고 밝혔다.

이날 법정에서는 유족들이 그간 말하지 못했던 70여 년 전 제주4·3의 상흔을 전했다.

희생자 고 김병언의 조카 A씨는 "아버지, 할머니, 올케 등 일곱 식구가 죽었다"며 "이렇게 억울한 일이 어디 있나. 이후엔 폭도 소리를 들으며 살았다"고 토로했다.

이어 "아무 죄 없이 촌에 사는 어린 조카들까지 죽여버렸다"며 "작은오빠는 대구형무소로, 삼촌은 마포형무소로, 아버지는 목포형무소로 갔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심정이다"고 전했다.

고 희생자 현문주의 조카 B씨는 "나는 4·3 당시 14살이었다. 희생된 삼촌은 23살이었다"며 "서귀포시 남원읍 수망리 산간에서 초토화작전이 전개될 때, 딱 선을 그어놓고 산간은 무조건 좌익, 남쪽은 우익 이렇게 갈라놓았다"고 전했다.

이어 "가족들은 해변으로 귀순했고, 엇갈린 삼촌은 주정공장에 끌려갔다가 목포형무소로 갔다는 얘길 들었다"며 "이후 소식을 알 수 없었다. 유골이라도 찾았으면 삼촌을 볼 면목이 있었을 텐데,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희생자 고 김두규의 아들 C씨는 "지금도 4·3에 대해 좌·우파 간 시비가 엇갈리고 있다"며 "최근 4·3을 폄훼하는 기사를 보고 '민주국가에서 어린애, 노인, 부녀자를 지체없이 총살하는 나라가 어디있냐'고 댓글을 달았다"고 말했다.

이어 "공권력에 의해 도민이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이제는 공권력으로 도민들을 구제해달라"며 "미군정에 대해서 책임을 묻는 건 쉽지 않겠지만, 국가에서 책임지고 추진해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검찰은 이날 법정에서 "제주4·3사건은 한국전쟁 이후로 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한 비극적인 사건"이라며 "희생자들은 아무런 죄가 없음에도 군경에 연행돼 처벌받은 것으로 보이고, 이와 관련한 증거가 전혀 없다"고 말한 뒤 무죄를 선고해줄 것을 요청했다.

강 부장판사는 이날 "뒤늦게나마 재심을 통해 피고인들의 유죄 판결을 뒤집고 무죄임을 밝하게 됐다"며 "형언할 수 없는 고초를 겪은 끝에 가족들과 단절된 채 망인이 된 피고인들이 안식할 수 있기를, 긴긴 세월동안 고통 속에 살아오며 한이 쌓일 수 밖에 없었던 유족들이 무죄를 통해 작은 위로를 얻을 수 있길 기원한다"고 소회를 밝혔다.

한편, 제주지방법원 제4형사부는 검찰 합동수행단 직권재심과 유족 청구 재심 등 희생자 1174명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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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취재부장 / 윤동원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