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인 23명, 1500만원 도박판 열어 현행범 체포
10명 환풍창 열어 도망…12시간 넘겨 5명 붙잡아
경찰, 수갑 등 도주 방지책 강구 않고 감시 소홀도
불법 도박혐의로 현장에서 붙잡힌 베트남인 10명이 지구대 창문을 통해 탈출해 경찰이 추적에 나섰다.
국내 체류중인 자국인들을 불러 모아 도박판을 벌여 현행범 체포된 베트남 국적 외국인 23명 중 10명이 지구대에서 조사를 기다리던 중 집단으로 달아났다.
지구대가 어수선한 사이 도망친 이들은 불과 15도 각도로 열리는 높이 20㎝ 환풍창을 통해 탈주했다.
이 과정에 경찰이 도주 방지책을 마련하지 않아 허술한 보안 실태가 도마에 올랐다.
경찰은 추적 끝에 검거하거나 자수한 5명을 제외한 나머지 도주자들에 대해 추적을 이어가고 있다.
◆ '간 큰 외국인들' 지구대서 집단 탈주
광주 광산경찰서는 불법 도박장을 열어 도박을 한 혐의(도박장개설·도박)로 베트남 출신 외국인 23명을 입건했다고 11일 밝혔다.
이들은 이날 오전 3시께 광산구 월곡동 한 주택에서 불법 도박장을 연 뒤 1000여 만 원대 판돈을 걸고 도박을 한 혐의다.
조사 결과 이들은 지난 10일 밤부터 판돈 1500만 원 상당을 걸고 홀짝을 맞추는 전통 도박 '속띠아'를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다음주부터 출입국관리소 차원의 대대적인 불법체류자 단속이 시작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일면식도 없는 같은 국적 체류자들을 불러 모았다.
도박을 벌이던 이들은 이날 오전 3시 16분께 '월곡동 한 주택 2층에서 집단 도박을 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의해 현행범 체포됐다.
이후 이들 중 10명이 이날 오전 6시 40분께 월곡지구대에서 집단으로 탈주해 경찰의 추적을 받고 있다.
달아난 10명 중 최소 7명은 타인의 신분으로 위장해 국내에 체류하고 있었던 것으로도 확인됐다.
경찰은 이날 저녁부터 A(32)씨 등 5명을 붙잡았다.
이들 중 1명은 광주 한 주거지에 숨어있다가 붙잡혔으며, 2명은 전남·북 모처까지 달아났다가 수사망이 좁혀오자 자수했다.
뒤이어 2명이 이날 오후 7시 30분부터 8시 사이 광주 출입국사무소에 들러 자수했다.
경찰은 나머지 5명에 대해서도 타 지역까지 수사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어수선했던 분위기 틈타 20㎝ 창문 열고 도망
경찰은 검거반을 꾸려 신고 1시간 뒤인 오전 4시 15분께 현장을 급습했다. 이후 기조 초사를 위해 현행범 체포된 이들을 각 조로 나눠 월곡지구대로 옮겼다.
현행범 모두가 지구대로 옮겨진 시간은 현장 급습 이후 1시간 30여분 만인 오전 5시 45분께다.
경찰은 옮겨진 현행범들에게 지구대 내 10평 규모 회의실에서 대기하라고 지시했다.
대부분이 한국어를 잘 하지 못하는 탓에 경찰은 통역사를 섭외하고 조사 대상자에게 형사 절차를 설명하느라 분주했다.
지구대가 어수선한 사이 먼저 임의동행된 자들 중 10명이 조사를 기다리다 회의실 창문을 열어 차례로 달아났다.
도주에 쓰인 창문은 너비 90㎝·높이 20㎝·약 15도 각도로 열리는 구조다. 발소리를 숨기기 위해 일부는 맨발로 도망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들이 오전 6시 10분부터 달아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 수갑 미사용·감시 소홀 '도마 위'
경찰은 붙잡힌 이들에게 수갑을 채우지 않았다. 수갑은 폭행·도주·극단적 선택 시도 등의 우려가 보이는 자들에게 채울 수 있다는 제한에 따라서다.
경찰청은 범죄수사규칙과 피의자 유치 및 호송 규칙 등을 통해 수갑 착용 여부를 안내하고 있다.
범죄수사규칙 제125조 4항은 '경찰관은 피의자가 도주, 자살 또는 폭행 등을 할 염려가 있을 때에는 수갑·포승 등 경찰장구를 사용할 수 있다'고 쓰여있다.
유치인을 다루는 피의자 유치 및 호송 규칙 제22조에도 수갑의 사용 범위를 출감·도주·극단적 선택·폭행 우려 등으로 제한하고 있다.
경찰은 앞서 현행범으로 체포된 이들에 대해서도 저항 없이 순순히 임의동행된 점 등에 따라 수갑을 채우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들이 별다른 말썽을 부리지 않자 경찰의 감시 태도도 누그러졌다.
당시 지구대에는 직원 7명과 지원을 나온 기동대 5명이 투입돼 있었지만 감시를 전담하는 인력은 별도로 없었다. 이따금 직원 일부가 회의실과 조사 공간을 오가며 동태만 확인했을 뿐이다.
게다가 경찰 회의 공간이라는 점에서 폐쇄회로(CC)TV도 설치돼있지 않았다.
광산경찰은 지난해 7월에도 피의자 관리 소홀로 데이트 폭행 사범 30대 남성을 지구대 조사 도중 놓친 바 있다. 담배를 피우고 싶다며 경찰서 바깥으로 나간 그는 동행한 경찰 1명의 추적을 피해 달아났다가 도주 7시간 만에 붙잡혔다.
경찰 관계자는 "수갑 사용 여부는 현장 지휘자의 판단에 따라 달렸다. 조사 당시 현행범들이 순순히 협조하겠다는 태도를 취해오면서 이같은 일이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며 "이들을 모두 붙잡은 뒤 정확한 경위를 조사할 것"이라고 했다.
경찰은 지구대에서 달아난 이들에 대해 도주 혐의를 추가로 적용할 계획이다. 또 불법체류자로 확인될 경우 출입국관리사무소로 신병을 인계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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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 장진우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