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같다" 작년 귀농 포도 농가, 황토빛 수해 현장에 '망연자실'

귀농 2년차 부부, 금지옥엽 키운 샤인머스캣 출하 앞두고 수해
침수 직후 뿌리 썩고 잎 말라가…"좌절감으로 일손 안 잡힌다"

"고대하던 첫 출하는 이제 꿈도 안 꿔요. 묘목만이라도 건졌으면…"

연일 내리던 장맛비가 모처럼 그친 25일 오후 전남 함평군 학교면 곡창리 샤인머스캣 재배 시설하우스.



샤인머스캣 품종 포도를 재배한 지 두 해 째인 강대근(70)씨는 난생 처음 겪는 수해에 착잡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하우스 주변 잡풀은 온통 흙을 뒤집어 써 푸르른 빛깔을 잃었고, 재배 시설 내 곳곳은 땅이 질어 발을 내딛기 어려울 정도였다.

강씨는 진흙밭으로 변해버린 두둑 사이를 조심스럽게 건너면서 하나하나 묘목을 살폈다. 올 봄 막 심어 키가 작은 1년차 묘목들은 흙탕물에 통째로 잠긴 듯 황토빛으로 변했다.

지난해 심어 넝쿨을 이루고 올해 9월 중순이면 첫 출하를 앞둔 묘목들도 성한 곳이 없었다. 이틀 가까이 성인 남성 무릎 높이까지 빗물이 넘실댔던 터라, 흘과 모래가 묻은 이파리는 누래지며 생기를 잃어갔다.

묘목을 보호하고자 깔아놓은 두둑 덮개 비닐과 하우스 벽체 곳곳에도 흙탕물이 들어찼다가 빠진 흔적이 또렷했다.


강씨는 아직 덜 영근 열매나 말라버린 잎을 어루만지며 "미치겠네"라고 거듭 말했다.

강씨는 번잡한 도시를 떠나 안정적이고 조용한 노후를 보내고자 아내와 함께 지난해 귀농했다. 그동안 벌어둔 돈을 대부분 끌어와 하우스 5개 동(3305.8㎡) 재배 부지·시설물을 매입, 상품 작물로 인기 있는 샤인머스캣을 심었다.

생전 처음 하는 농사일이었지만 제대로 해보고 싶은 마음에 부부는 하루도 빠짐 없이 심은 묘목을 보살폈다. 포도 묘목이 물기에 약한 만큼 특히 배수관거 정비 만큼은 게을리 해본 적이 없다고 강씨는 전했다.



강씨는 "밤낮으로 하루도 거르지 않고 돌봤다. 금지옥엽 키운 만큼, 생장 속도도 평균 이상으로 빨라 2년 밖에 안 됐어도 3~4년 된 묘목처럼 제법 열매가 영글었다. 큰 돈 투자하고 2년 꼬박 피땀 쏟은 보람의 결실을 올해는 볼 줄 알았다"고 토로했다.


마을 주민들도 지대가 높고 배수로와 인접한 시설하우스가 잠긴 적은 처음이라며 "거짓말 같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강씨의 첫 수확 꿈을 앗아간 비는 지난 23일 자정부터 거세게 쏟아졌다. 하우스 주변 배수로마저 넘쳐 하우스로 밀고 들어온 흙탕물은 빠지지도 못했다. 강씨는 전날 오후에야 119소방대 구명보트를 타고 물이 덜 빠진 논을 건너 하우스에 다다랐다.

맨발로 뛰어들어가봤지만 두둑 사이로 흙탕물이 넘실댔고, "손 써볼 도리가 없었다"라고 강씨는 회상했다.


강씨는 2년째 애지중지 키운 샤인머스캣 열매를 가리켜 "수확·출하는 꿈도 꾸지 않는다. 당도가 빠져 제 값 못 받는 건 문제도 아니다"라고 자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15년 가까이 수확해야 할 묘목이 뿌리째 썩어버리면 하우스 농사를 아예 접어야 하나 싶다"며 한탄했다.

강씨는 올 가을 출하는 포기하고 땅이 마르는 대로 묘목 상태를 다시 살필 계획이다. 묘목 중 상당수는 폭우 뒤 찾아온 폭염으로 병충해에 취약하거나 이미 썩기 시작해 뿌리째 뽑고 다시 심어야 한다.

강씨는 "첫 농사지만 잘 키웠다는 자긍심을 느꼈지만 이젠 좌절감이 너무 크다. 어디서부터 정리를 해야할 지 가늠도 되지 않고 일손도 잡히지 않는다"고 했다.

지난 23일부터 전날까지 함평 지역 공식 누적 강수량은 244.5㎜다. 특히 전날 오전 2시 전후로 1시간 동안 최대 59㎜의 강한 비가 쏟아지며 함평에서만 농경지 450㏊가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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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평.무안 / 김중현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