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빼돌려도 횡령 처벌 못하는 사립유치원…'법인화 추진' 막히나

교육부, 정의당 류호정 사학법 개정안에 의견
개정안, 신설 유치원은 학교법인만 설립·운영
사립유치원 86%, 개인 운영…"횡령죄 피해 가"
과거 정책연구에서는 "법인화가 근본적 해법"

교육부가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였던 '사립유치원 공공성 강화'의 일환인 법인화 추진에 부정적 입장을 국회에 밝혔다.

현재 사립유치원의 약 86%가 학교법인이 아닌 개인이 운영하고 있어 공금을 빼돌려도 형법상 횡령·배임죄로 처벌하기 어렵다. 사립유치원에 누리과정 등의 국가 지원금이 투입되고 있고 공공성 강화가 사회적 지지를 받았던 만큼 일관된 추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일 정의당 정책위원회 등에 따르면 교육부는 정의당 류호정 의원이 지난 6월 대표 발의한 '사립학교법' 개정안에 대한 반대 성격의 '신중 검토' 입장을 제출했다.

류 의원의 법률안은 '학교법인이 아니면 설립할 수 없는 사립학교의 종류'에 사립유치원을 포함하되, 법 개정 전 설립된 사립유치원은 법인화를 강제하지 않고 개인 등이 운영할 수 있게 종전 규정을 적용한다.

이는 2021년 문재인 정부 교육부가 발표한 '사립유치원 공공성 강화 후속조치 방안'과 같은 내용이다.

당시 교육부는 국가재정 지원으로 학부모 부담을 줄이고 공공성을 강화하는 '공영형 유치원'을 확대하고, 새로 설립하는 사립유치원은 학교법인만 운영 주체가 되도록 관련 법률을 개정해 나가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지난 7월 국회 교육위원회 채수근 수석전문위원이 류 의원의 법안에 대해 작성한 검토보고서를 보면, 교육부는 "사립유치원의 법인화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앞서야 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답변했다.

지난해 4월 사립유치원 3446곳 중 86.0%인 2962곳은 개인(사인, 私人)이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사회복지법인 등 비(非)학교법인까지 합하면 3311곳(96.1%)이다.

교육부는 이처럼 유치원이 다른 학교와 다른 특수성이 있는데다, 윤석열 정부 들어 어린이집과의 유보통합이 추진되고 있어 통합기관 설립 기준을 마련할 예정이기 때문에 당장 법을 바꾸기보다 종합적으로 접근하자는 것이다.


반면 채 위원은 "사립유치원을 학교법인만 설립·경영할 수 있도록 하면 재정·회계에 관한 규정, 해산에 관한 규정 등이 적용돼 유치원이 더욱 투명하고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을 것"이라며, "누리과정 등 국가 지원금이 지급되고 있어 투명한 회계 운영과 공공성의 확보가 필요한 상황이라 생각된다"고 긍정 입장을 제시했다.

교육 당국 간에도 의견이 엇갈린다. 같은 보고서에서 경남도교육청은 "유치원 무상교육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개정안에 따라 사립유치원의 책무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기존 개인 설립 사립유치원도 학교법인으로 전환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자"고 적극 지지했다.

현재도 유치원 돈을 다른 목적으로 부정하게 돌려 쓴 설립자나 경영자를 처벌할 근거가 없지는 않지만, 형법상 횡령죄나 배임죄보다 처벌 수위가 약하다. 쉽게 말해 '개인 설립'은 '내 재산을 마음대로' 다루는 것이니 남의 재산을 부정하게 쓴 횡령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현행 사립학교법은 사립학교 경영자가 유치원 교비회계를 목적 외로 부정하게 사용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정하고 있다.

2018년 비리 사립유치원 명단 공개 이후 사회적 지지 속에 2020년 국회를 통과한 '유치원 3법'(유아교육법·사립학교법·학교급식법 개정안)에 담겼던 내용이다.

반면 학교법인 이사장이 교비회계를 부정하게 사용한 경우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로 간주돼 형법상 횡령, 배임죄 적용을 받을 수 있다. 이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업무상 횡령이 적용되면 이보다 더 중한 10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

처벌 수위만 다른 게 아니다. 학교법인이 운영하는 사립학교는 개인은 물론 다른 법인과 달리 보다 엄격한 규율이 적용돼 운영 안정성에 초점을 뒀다.

현행 사립학교법에 따라 관할청(유치원의 경우 시·도교육청)에 예·결산을 보고해야 한다. 파산 등으로 해산할 때도 교육부 인가를 받아야 해 소위 '먹튀'도 예방한다.


때문에 유치원을 많이 늘릴 필요가 있던 과거에는 학교법인보다 진입과 퇴로가 쉬웠던 개인 설립이 용인됐지만, 학령인구가 감소하고 유치원 운영자의 회계 부정 문제가 지적된 지금은 법인화가 해법이라는 분석이다.

지난해 사립유치원 신설은 단 1곳에 그쳐 2018년(48개)과 비교해 5년 새 크게 급감한 상태다. 한국교육개발원(KEDI) 교육기본통계를 보면, 올해 4월 현재 사립유치원은 3308개원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138개 줄었다.

교육부가 2021년 1월 오범호 서울교대 교수 연구팀에 의뢰한 정책연구 보고서 '사립유치원 법인화를 위한 제도 개선 방안'을 보면, 연구진은 "공공성 확보를 위한 근본적 방안은 사립유치원의 법인화"라고 강조했다.

연구진은 "정부 재정지원 방식의 변화나 케이(K)-에듀파인 등 회계시스템의 도입 등 방안만으로는 근본적 문제 해결이 어렵다"며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서는 사립유치원을 규율하는 법규가 필요하며 국가의 감독과 관리를 받는 법인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송경원 정의당 교육 분야 정책위원은 "교육부는 유보통합 과정에서 검토될 여지를 열어 뒀지만 지난 1월 유보통합 추진 방안에서 '기관 운영상 다양성과 자율성을 보장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며 "사립유치원 법인화를 사실상 없던 일로 돌린 것으로 짐작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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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 안철숭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