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행 부인하고 반성하지 않아"
공범 9명 징역 각 7~10년 구형
인천 미추홀구 일대에서 100억원대 전세보증금을 가로챈 혐의로 구속 기소된 60대 건축업자, 이른바 '건축왕'에게 사기죄 법정최고형이 구형됐다.
인천지법 형사1단독 오기두 부장판사의 심리로 열린 17일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사기, 부동산실명법 위반, 공인중개사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한 건축업자 A(63)씨에게 징역 15년을 구형했다.
검찰은 같은 혐의로 기소된 공인중개사, 명의수탁자 등 공범 9명에게 징역 각 7~10년을 구형했다.
검찰은 또 115억5678만원에 대한 추징 명령을 요청하면서 "이들이 얻은 범죄 수익을 박탈해 다시는 전세사기 범행이 발생하지 않도록 엄벌해달라"고 했다.
검찰은 "A씨가 피해 회복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고 부동산 경기 침체 등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 사업이 어려워졌을 뿐이라고 범행을 부인하는 등 전혀 반성하지 않고 있다"고 구형 이유를 밝혔다.
A씨 측 변호인은 최후변론에서 "피고인은 (수사 초기) 더 이상 피해를 회복할 수 없는 엄청난 범죄를 저지른 사람처럼 낙인찍혔다"며 "경찰과 검찰이 처음부터 결론을 내놓고 이 사태를 해결할 수 없는 수렁에 밀어 넣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계속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재판장께서 피고인들의 공소사실에 대해 법리적으로 검토해 주길 부탁드린다"고 요청했다.
앞선 재판 과정에서 A씨 측은 "사기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하지 않아 사기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며 "사기죄가 성립하지 않으면 공인중개사법 위반죄도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날 최후진술에 나선 A씨는 "본의 아니게 사회적 물의 일으킨 점 사죄드린다"면서 "힘들게 버티고 있는 임차인들께도 너무 죄송하다"고 말했다.
이어 "무조건 전부 다 제 탓"이라며 "임직원들은 죄가 없으니 저만 처벌해달라"고 호소했다.
오 부장판사는 피해자들에게 발언할 기회를 줬다.
안상미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지금까지 1년 넘는 시간 동안 피고인들은 허상뿐인 이야기들만 해왔다"며 "피해 복구는 더욱 멀어져 갔고 정부의 지원만으로 피해자들을 구제할 수도 없다"고 지적했다.
안 위원장은 "이 사건은 부동산 질서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무너뜨렸다"며 "제대로 된 판결로 피고인들이 죗값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A씨 등에 대한 선고공판은 다음달 같은 법정에서 열릴 예정이다.
A씨 등은 지난 2022년 1월부터 같은해 7월까지 인천 미추홀구에 있는 자신이 소유한 공동주택의 임차인 191명으로부터 전세보증금 약 148억원을 가로챈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이 2차 기소해 별건 재판 중인 사건까지 합하면 2021년 3월부터 2022년 7월 사이 건축왕 일당의 전세사기 피해자는 563명, 피해 보증금은 약 453억원이다.
검찰은 A씨가 지난 2018년 1월 강원 동해 망상지구 도시개발 사업 부지 확보를 위해 자신이 운영하는 건설사의 공사대금 등 약 117억원을 횡령한 혐의(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도 추가로 규명해 기소했다.
검찰 관계자는 "이 사건과 별도로 재판 진행 중인 피고인들의 전세사기 범행 관련 사기, 범죄단체조직, 특정경제범죄법 위반 등 사건에 대해서도 죄에 상응하는 형이 선고될 수 있도록 공소 수행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건축왕' A씨는 지난 2009년부터 공인중개사, 중개보조원 등 다른 사람 명의를 빌려 대부분의 토지를 매입하고 자신이 운영하는 종합건설업체를 통해 소규모 아파트, 빌라 등 주택을 직접 건축했다.
그는 부동산 개발 관련 대규모 대출(PF)과 준공 대출금으로 건축 비용을 충당하고 임차인들로부터 받은 전세보증금으로 사업비용을 충당하는 과정을 반복하며 2700여채에 달하는 주택을 보유했다.
하지만 A씨는 대출금과 전세보증금 수입에만 의존해 대출이자, 직원 급여, 보증금 등을 돌려막기 하던 중 결국 늘어나는 이자를 감당하지 못했다.
이에 지난 2022년 1월부터 여러 주택의 경매가 개시됐지만 A씨가 고용한 공인중개사 등은 이 사정을 숨기고 전세계약을 체결해 전세보증금을 가로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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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 김 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