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셀 공장, 3년간 "우리 이상 없음"

화성 일차전지 공장 화재…23명 사망·8명 부상
리튬, 위험물 관리되고 있지만…규정준수 여부
물과 접촉 시 큰 화재…전용 소화기 개발 안돼
자체점검 이상무? 대피로 확보 안돼 사각지대

경기 화성시 공장 화재로 23명이 숨지는 등 31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가운데, 관리 허점과 대응 미비가 또다시 대형 화재 참사를 불렀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범정부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뒤늦게 근본적인 재발 방지책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25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에 따르면 전날 오전 10시31분께 화성시 서신면 소재 리튬 일차전지 제조업체 아리셀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23명이 숨지고 8명이 부상을 입었다.

수색 이틀째인 이날 오전 현장에서 실종자로 추정되는 시신 1구가 추가 수습돼 사망자는 23명으로 늘었다.

현재 정확한 화재 원인은 조사 중이지만, 소방 당국은 공장 내부에 있던 배터리셀 하나에서 폭발적으로 연소가 시작돼 화재가 급격히 확대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공장에는 리튬 배터리 완제품 3만5000여개가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차 전지인 리튬 배터리는 양극, 음극, 분리막, 전해액 등으로 구성된다. 분리막이 손상되면 양극과 음극이 접촉해 과열되면서 화재와 폭발이 발생하는 식이다.

특히 하나의 셀에서 불이 나면 도미노처럼 계속 다른 셀로 불이 옮겨 붙으며 이른바 '열폭주'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일단 현행 규정상 리튬은 위험물 1~6류 중 3류인 '자연 발화성 물질 및 금수성(물과 접촉하면 안 되는 성질) 물질'에 해당해 위험물안전관리법에 따라 관리되고 있으며, 관련 규정도 마련돼 있는 상태다.

문제는 이러한 규정을 현장에서 얼마나 잘 지키고 있느냐다.

인세진 우송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위험성이 높은 많은 양의 리튬 배터리를 한 공간에 뒀다는 것이 이번 화재의 피해를 키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여기에 리튬이 물과 직접 닿을 경우 더 큰 화재와 폭발을 일으킨다는 점은 복병으로 작용했다.

실제로 화재 발생 직후 현장에서 근무하던 작업자들이 소화기를 이용해 화재를 진압하려 했으나, 리튬 특성상 일반 소화기로 불을 끄는 데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방 당국도 이 때문에 초기 진화에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전해졌다. 리튬 화재의 경우 전용 소화 약제나 마른 모래 등을 이용해 진화해야 한다.

다만 전용 소화기는 금속 화재가 소방법상 화재 유형으로 분류되지 않아 개발이 어려운 상태다. 이에 소방은 마른 모래 등으로 진화하는 방식을 검토했으나, 배터리에 포함된 리튬이 소량으로 확인돼 물을 활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화재가 발생한 공장은 최근 3년 간 소방시설 자체 점검에서 이상이 없다고 소방 당국에 보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대규모 인명 피해가 발생함에 따라 부실 점검 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또 건물 면적이 기준 미만이라는 이유로 '화재 안전 관리 중점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점, 비상 대피 경로가 제대로 확보되지 않아 피해가 커졌을 것이란 점 등을 고려했을 때 '관리 사각지대' 비판을 피하지 못할 전망이다.


정부는 이번 화재와 같은 안타까운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이다.

이상민 장관은 이날 중대본 회의에서 "유사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한 사고 원인 규명과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겠다"며 "관계부처와 민간 전문가가 포함된 범정부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근본적인 개선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했다.

앞서 전날 윤석열 대통령은 화재 현장을 방문해 기존 소화기나 소화전으로 진화가 어려운 경우 대체 진화 수단을 마련하고 화학물질의 적재 방법과 위치, 화재 시 대피요령 등을 고려한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이 장관은 "행안부는 재발방지 대책 수립을 총괄하고 고용부, 산업부 등 8개 부처 합동으로 유사 시설에 대한 안전 점검과 외국인 화재 안전 교육을 강화하겠다"며 "리튬 전지와 같은 화학물질에 대한 소화약제도 새롭게 개발하겠다"고 했다.

소방청도 오는 7월9일까지 2주 간 전국 배터리 관련 시설 213개소를 대상으로 전지제품 다량 적재 등 안전관리 실태확인, 위험물 저장·취급 및 안전관리 규정 준수 여부 등 긴급 화재안전 조사를 실시할 계획이다.

다만 대형 참사를 겪고 나서야 내놓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식의 대책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한국노총은 "매번 비슷한 참사가 반복되는 것은 제대로 된 대책이 수립되지 않았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민주노총은 "리튬 전지의 폭발 사고 위험이 수차례 제기됐음에도 사업장에 대한 안전은 무(無) 대책으로 방치됐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장단기적으로 재발 방지 대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대책을 마련했다 해서 안전 사고가 일어나지 않을 수는 없다"면서도 "단기적으로는 점검 대상 등을 신속히 살피고, 장기적으로는 지속적인 안전 교육과 지원 방안 등을 고민해야 한다"고 밝혔다.

인 교수도 "리튬 배터리 같은 위험물을 한 곳이 아닌 분산 보관하는 등 안전 수칙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며 "시간이 오래 걸릴 일이지만 가장 좋은 방법은 화재 안전 교육 등 안전 의식을 꾸준히 고취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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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부 차장 / 곽상현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