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녀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 11년 만에 재심 열리나

광주고법 재심 개시 판단 위한 마지막 심문기일
"강압 수사로 혐의 부인 전부 빼, 만들어진 자백"
"피고인에 유리한 증거·감정 결과 73개 미제출"
檢 "누명 씌울 이유 없다" 재심 청구 기각 요청

2009년 전남 순천에서 발생한 이른바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사건'으로 유죄 확정판결을 받은 부녀(父女)의 재심 결정 여부를 판단하는 마지막 심문기일이 열렸다.



부녀의 법률 대리인은 허위 자백 강요와 조서 왜곡 등으로 검찰의 수사 과정 전반이 위법했다고 주장하면서 재심 개시 필요성을 강조했다. 검찰은 부녀에게 누명을 씌울 이유나 동기가 없었고 적법하게 수사를 했다고 주장하며 재심 청구를 기각해달라고 요청했다.

광주고법 제2-2형사부(오영상·박정훈·박성윤 고법판사)는 8일 201호 법정에서 존속 살해 등 혐의로 기소돼 각각 무기징역과 징역 20년을 선고받은 백모(73)씨와 딸(39)에 대한 재심 여부를 정하기 위한 마지막 심문기일을 열었다.

백씨는 2009년 7월 6일 순천에서 청산가리를 넣은 막걸리를 아내 최모(당시 59세)씨와 최씨의 동료에게 마시게 해 이들을 숨지게 한 혐의 등으로 딸과 함께 기소됐다.

당시 최씨가 사업장에 가져온 막걸리를 함께 나눠 마신 다른 동료 2명도 중태에 빠졌다.

검사는 부적절한 관계를 맺어온 백씨 부녀가 갈등을 겪던 최씨를 살해했다고 봤다.

1심은 숨진 최씨가 남편과 딸의 부적절한 관계를 알지 못했을 가능성, 범행에 사용한 청산가리·막걸리의 구입 경위가 명확하지 않은 점, 백씨 부녀의 자백 진술에 신빙성이 없는 점 등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2심은 백씨 부녀와 최씨의 갈등을 살인 동기로 볼 수 있고 청산가리 보관 등 범행 내용·역할 분담에 대한 진술이 동일하다고 봤다. 또 정신감정·지적능력 등을 고려할 때 자백 진술에 대한 임의성·합리성이 인정된다며 원심을 깨고 각 무기징역과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대법원은 2012년 3월 2심 선고대로 형을 확정했다.


하지만 범행 현장에서 나온 막걸리 용량이 구입처로 지목된 식당에서 주로 취급하지 않았던 점, 막걸리 공급 장부 사본이 위조된 것으로 보이는 점, 청산가리 입수 시기·경위와 감정 결과가 명확하 않았던 점, 진술 번복과 자백 강요 등으로 논란이 일었다.

백씨 부녀는 억울함을 호소하며 지난해 재심을 청구했다.

백씨 부녀 법률 대리인 박준영 변호사는 이날 변론에서 "검사가 백씨 부녀의 혐의 부인 과정을 빼고 하지 않은 진술을 조서와 의견서에 허위 기재했고, 백씨 부녀에게 유리한 증거만 재판에 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물증 없이 짜 맞춘 조서(문답 조작, 답변 왜곡 등)로 서명·날인을 받고, 이후 조사 과정에 계속 추궁하면서 이렇게 진술하지 않았냐고 잔인하게 허위 자백을 강요했다는 취지다.



박 변호사는 검사의 직무상 범죄사실(허위공문서작성행사,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을 밝혀야 한다며 재심 개시 결정이 필요하다고도 강조했다.

백씨가 범행 전(막걸리 생산일~사건 발생) 화물차를 몰고 순천 시장 식당에 들러 막걸리를 사 왔다는 증거(도로 CCTV 영상)를 확보하지 못한 검사가 '경찰 CCTV 운영의 기술적인 문제로 자료가 없다'고 거짓말한 점, 압수한 플라스틱 스푼에서 청산염이 검출되지 않자 압수 조서와 감정 결과도 증거로 제출하지 않은 점, 진술에서 충분히 확인할 수 있는 청산가리 입수 경위를 검증하지 않은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또 글을 읽거나 쓸 줄 모르는 백씨의 자술서가 조작된 것으로 보이는 여러 정황, 정신 감정 결과 지적 능력이 떨어지는 백씨의 딸에게도 검사가 강압적인 수사를 한 것으로 보이는 점, 영상 녹화를 최소화하거나 진술을 꿰맞춰 수사 결과를 왜곡한 점, 백씨 부녀에게 유리한 증거 73개를 제출하지 않은 점 등으로 미뤄 '만들어진 자백으로 증거 가치가 없다'고 역설했다.

이어 재판을 열어 재심 개시를 결정하고 백씨 부녀의 형 집행을 정지해달라고 요구했다.


검사는 "기존 공판 과정에 일부 증거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음을 인정한다. 증거가 제출됐다면 결과가 달라질 수 있었음을 부정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다만 "백씨 딸의 자백이 나오면서 원칙대로 수사했다. 자백 진술의 임의성·합리성이 인정된다. 진실을 왜곡하거나 은폐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었다. 객관 의무를 위반해 자의적으로 공소권을 행사한 것이 아니다"며 재심 청구를 기각해달라고 요청했다.

재판부는 "사안이 중대한 만큼, 충분히 기록을 검토해 재심 개시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대법원 판결 이후 11년 만에 재심 개시 결정이 내려질지 관심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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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외전남 / 손순일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