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조 불법 행위 없었다면 소멸시효 지나지 않아"
"예금거래 기본 약관 어긴 신협이 손해배상 해야"
회사 직원이 신용협동조합(신협) 직원과 짜고 회사 대표 예금을 무단으로 인출하거나 타인에게 이체한 경우 신협에도 배상 책임이 있다는 파기환송심 판단이 나왔다.
신협 직원들이 연루된 불법 예금 인출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돈을 맡긴 회사 대표의 채권 시효가 만료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취지다.
광주고법 제2민사부(양영희·김진환·황진희 고법판사)는 병원 운영자 A씨가 B신협을 상대로 낸 예탁금 지급 청구 소송 파기환송심에서 "B신협은 A씨에게 18억 2535만 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했다고 3일 밝혔다.
A씨는 병원 직원 C씨에게 2011년 1월 10억 원을 자신의 명의로 B신협에 입금해달라고 맡겼다. C씨는 예금계좌를 만든 직후 분실신고를 해 통장을 재발급받았다. C씨는 재발급된 통장을 이용해 이 돈을 인출·이체한 것으로 조사됐다.
약 10억 원을 인출한 것 외에도 C씨는 A씨 명의 예탁금 지급청구서를 위조해 B신협 직원에게 제시, 약 57억 원을 인출한 혐의로 징역 4년의 형이 확정됐다. B신협 소속 전무도 C씨 범행을 방조했다는 혐의로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이에 A씨는 B신협을 상대로 예금이 그대로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예탁금 반환 청구 소송을 2018년 4월에 제기했다. 예비적으로는 B신협 직원이 C씨의 불법행위에 가담한 것을 근거로 사용자 책임을 묻는 청구도 포함했다.
변론 과정에 B신협은 예탁금 반환 청구는 소멸시효(5년)가 지났다고 주장했다. 또 A씨가 소멸시효 완성 전에 조치를 취하지 않았기 때문에 예금 채권이 소멸한 것이지 B신협 직원들의 행위와는 인과관계가 없다고 예비적 청구도 부인했다.
1심은 A씨의 주위적 청구에 대해선 '소멸시효가 지났다'는 B신협 주장을 대부분 받아들였다. 다만 2013년 7월에 입금된 10억 원은 소송제기일로부터 5년이 지나기 전이라고 보고 이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예비적 청구는 기각했다.
2심은 1심이 인정한 10억 원은 타인 명의 계좌에서 10억 원이 입금됐다가 다시 반환된 것이라고 보고 변제됐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2심은 2013년 7월경의 잔액인 4100여만 원의 지급을 명령하고, 예비적 청구는 기각하는 판결을 선고했다.
대법은 2심이 주위적 청구의 일부인 4100여만 원을 인용한 것은 타당한 판단이라고 봤다. 다만 사용자 책임을 묻는 예비적 청구를 기각한 것은 하급심이 다시 판단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보고 파기환송 했다. 신협에도 일부 배상 책임이 있다는 취지다.
파기환송심 재판부도 신협 직원들의 불법 행위로 A씨가 손해를 봤다며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신협 직원들은 C씨가 A씨 동의 없이 예탁금을 무단 인출하는 사정을 알면서도 확인 절차 없이 편취 범행을 방조했다. 신협 직원들이 예금거래 기본 약관을 어기고 통장 재발급과 예금 무단 인출을 방조하면서 A씨의 예금 채권을 시효 만료로 소멸하게 했다. 불법 행위와 예금 채권 소멸시효 완성 사이에 인과 관계가 있다"고 봤다.
이어 "신협은 민법 756조에 따라 A씨에게 끼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다만, A씨가 회사 직원 C씨에 대한 감독을 소홀히 한 점, A씨가 시효 완성 전에 예금 인출을 요구하지 않은 점, 신협이 직원들의 불법 행위를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않은 점 등을 두루 고려하면 손해배상액을 전체 손해액의 30%로 제한한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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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외전남 / 손순일 기자 다른기사보기